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콜트레인 (문단 편집) == 사후의 영향력 == 워낙 리더 경력이 늦게 시작된 탓에 다른 재즈 아티스트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리더 앨범들을 남겼을 뿐이지만, 대부분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윗 항목에 소개한 앨범들 외에는 [[My Favorite Things(존 콜트레인)|My Favorite Things]]도 모달 재즈와 소울, 펑크 등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명작으로 일컬어진다. 앨범에 대한 높은 평가 외에 자작곡들도 지금은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고정되어 애주되고 있고, 기존 레퍼토리를 완전히 새롭게 개작한 경우에도 '콜트레인 버전'이라고 독자적으로 취급될 정도다. 만년에 그룹 활동을 같이 했던 파로아 샌더스 외에도 [[앨버트 에일러]]나 [[아치 셰프]]를 비롯한 후배 색소포니스트들도 콜트레인과 작업하면서 전면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색소포니스트들 외에 다른 악기를 다루는 모던 재즈 아티스트들도 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마일스의 경우 콜트레인의 마약 습관이나 프리 재즈를 향한 방향 전환은 대단히 못마땅하게 바라보았지만, 음악에 대한 예리한 감각과 박식함은 확실히 높이 샀다. 프리나 아방가르드 재즈, 에스닉 성향의 후배 뮤지션들에게는 그야말로 [[태양]]으로 여겨졌을 정도. [[소니 롤린스]]의 경우에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한동안 잠수를 탔다. [[클래식(음악)|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들 중에도 콜트레인의 솔로를 따서 분석한 뒤 작곡에 응용한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찰리 파커를 따라 비밥을 마스터하고([[Giant Step]]) 마일스 데이비스를 따라 하드밥을 마스터하고([[Blue Train]]) 거기에 당시 신개척지인 프리 재즈에서도 정점을 찍은([[A Love Supreme]]) 인물이다. 게다가 이런 현란한 연주 못지 않게 발라드에도 정통한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발매한 발라드 앨범이 불티나게 팔려나가 생활고에 시달린 적이 없을 정도. 하여튼 저런 모던 재즈를 완전히 섭렵하는 업적을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고 사망한 덕분에 현재까지도 재즈 음악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밴드는 콜트레인의 사후 미망인 앨리스 콜트레인이 리더 자리를 넘겨받아 몇 년간 지속되었고, 앨리스가 2007년에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들인 라비 콜트레인이 재즈 색소포니스트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부자사이의 음악스타일은 상당히 다른 편이다. 그의 직계 가족 외에도 조카인 스티븐 엘리슨 역시 [[플라잉 로터스]](소속 레이블은 Warp Records)라는 이름으로 음악 생활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J Dilla의 영향을 짙게 받아 일렉트로닉 힙합을 위주로 했으나 피는 못 속이는 법. 2010년 발표한 앨범 Cosmogramma에서는 삼촌 라비 콜트레인,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등을 게스트로 맞이해 프리 재즈와의 결합을 적극 시도한 바 있다. 또한 [[Grand Theft Auto V]]에서는 자신의 명의로 된 작중의 라디오 채널을 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St. John Coltrane Church라는 교회가 있다. 매주 일요일 잼 세션이 열린다고 한다. [[http://www.coltranechurch.org|홈페이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